내년부터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합법적 절차를 거쳐 사업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불법 사업자를 통한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피해도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사업자에게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한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빛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의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시행 방안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이 가상자산 사업자들의 정부 신고 필수항목인 실명확인 계좌 발급 조건을 사실상 은행재량에 맡기면서 규제 불확실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하면, 아예 정부 신고를 할 수 없어 불법 사업자가 된다.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 불법 사업자들이 늘어날 경우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도 묘연해질 것이라는게 업계의 걱정이다.   

실명계좌 발급, 우수은행이 판단

금융위원회는 11월 3일부터 12월 14일까지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적으로 내년 3월 25일부터 시행된다.

시행령안에서는 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실명계좌 발급 요건을 △고객 예치금 분리·보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신고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것 △고객 거래내역 분리 관리 △금융회사가 가상자산 사업자의 자금세탁행위의 위험을 식별, 분석, 평가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금융회사는 은행으로 제한했다. 금융위는 "개정 특금법 시행 초기에는 자금세탁방지 역량 및 실적이 우수한 은행부터 실명계좌를 도입한 후 제도 안착 정도에 따라 타 금융회사 등으로 허용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적 우수 은행의 구체적인 기준은 시행령안에 명시하지 않았다. 

"가상자산 사업, 그레이존 될 것"

만약 시중은행이 자금세탁 사고에 연루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실명계좌 발급을 거부할 경우 가상자산 거래소는 더 이상 합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없다. 
현재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거래소는 물론이고 이미 실명계좌를 확보하고 있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도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처지는 비슷한 셈이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준법감시담당자는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 결정에 은행의 자의적 판단이 들어가게 되면 이는 계속해서 가상자산 사업 전개 과정의 '그레이 존'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로 인해 미신고 사업자가 발생할 경우 발생 가능한 투자자 피해에 대한 대비책은 아직 없다. 금융위는 "미신고 사업자의 폐업으로 인한 투자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시장에서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지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다만 가상자산 거래에 현금이 이용되지 않아 예치금이 없을 경우에는 실명계좌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업계 "진흥법 제정 시급"

이 때문에 업계는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진흥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강력한 규제법인 특금법 외에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고,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업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 진흥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과 김병욱 의원이 각각 '블록체인 진흥 및 육성 등에 관한 법률안'과 '가상자산법' 제정을 추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