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가상자산을 향해 사업 보폭을 넓히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0%대 이자율에 실망한 금융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가상자산을 활용한 디지털 금융에 본격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금융 당국은 은행들에게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허용했고, 스위스에서는 국영은행이 나서서 가상자산 거래와 예치 서비스를 시작한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CBDC) 발행에 가속을 붙이는 한편에서 시중 은행들도 일제히 가상자산 사업에 발을 들이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발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우후죽순'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통화감독청(OCC)이 최근 모든 규모의 국가 저축은행과 연방 저축협회에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미국 은행들의 가상자산 사업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은행, 웰스파고 등 미국 통화감독청(OCC)의 감독을 받는 모든 은행이 대상이다.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는 소비자가 현금을 은행에 맡기고 이자를 받는 것처럼, 가상자산을 은행에 맡기고 이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스위스의 국영 상업은행인 바슬러 칸토날방크(BKB)는 자회사인 방클레어(Bank Cler)를 통해 내년부터 가상자산 거래와 예치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일정을 공개했다.  

글로벌 금융회사인 스탠다드차타드도 기관투자자 전용 가상자산 예치서비스 시장에 진출한다. 알렉스 맨슨 SC벤처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가상자산 예치 솔루션을 만들겠다"며 "20곳의 기관투자자가 SC벤처스의 가상자산 예치 솔루션에 관심을 포했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과 증권형 토큰에 적합한 형태로 솔루션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NH농협은행이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NH농협은행 류창보 디지털R&D센터 파트장은 최근 "지난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가상자산이 제도권으로 편입, 성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며 "향후 가상자산 관리를 위한 신뢰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은행 주도의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들, 디지털화폐 삼매경


각국 중앙은행들은 디지털화폐에 빠졌다. 중앙은행들의 협력체인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해 말 전세계 66개 중앙은행 중 약 80%가 디지털 화폐를 설립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는 법정통화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CBDC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전자적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에 가상자산과 유사하지만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에서 탈중앙화를 내세운 가상자산과 차이가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현재 디지털 위안화 발행 및 유통을 위한 법규를 정비하고 있다. 디디추싱, 빌리빌리 등 중국 내 모바일 결제 규모가 많은 20개 이상 기업과 디지털 위안화에 대한 테스트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일반 은행계좌에서 디지털 위안화 지갑으로 현금을 이체할 수 있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위안화 지갑에 자산을 모으거나 결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 저축을 위한 지갑 플랫폼도 테스트 중이다. 지난 5월에는 국유기업 일부 직원 월급에 이 지갑 플랫폼을 적용했다.

일본정부는 지난달 17일 각료회의(국무회의)에서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에 관한 기본방침'에 "디지털화폐를 각국과 제휴하면서 검토한다"고 명시해 디지털화폐에 대한 검토를 공식화했다. 그 일환으로 디지털 화폐를 연구하기 위한 조직인 디지털 화폐 그룹을 일본중앙은행(BOJ) 지급결제시스템부 내 10여명 인원으로 구성했다. 지난 2월에 설립한 디지털화폐 연구팀을 개편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과 각국 중앙은행이 나서 디지털화폐를 추진 중이다. ECB는 지난 1월 영국, 스위스, 스웨덴, 캐나다, 일본까지 5개국 중앙은행 및 국제결제은행(BIS)과 디지털화폐 연구를 위한 실무그룹을 만들었다.

이와 별개로 프랑스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BDF)은 지난 5월 프랑스 대형 금융사와 유로화 기반 디지털화폐로 결제하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DNB)도 지난 4월 발간한 'CBDC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유럽연합의 디지털화폐 외에 자체 디지털 화폐 개발도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 스웨덴은 디지털화폐인 e-크로나를 개발·실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자지갑에 든 디지털화폐로 쇼핑을 하거나 입출금, 계좌이체를 할 수 있도록 플랫폼도 개발 중이다.

영국도 자체 디지털화폐를 검토하고 있다. 앤드류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는 최근 한 행사에서 "우리는 디지털화폐를 계속 연구하고 있다"며 "몇 년 안에 디지털 화폐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국은행도 내년 1~12월 디지털화폐 실험운용에 나설 계획이다. 스마트 컨트랙트 전문가로 구성된 법률자문단도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