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블록체인 개발의 핵심인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블록체인 개발의 중심에는 삼성, 네이버, NHN과 같은 대기업들, 즉 ‘재벌’들이 있다. 한국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특히 암호화폐 시장이 상승세를 보이던 2017년, 한국에서는 소규모 거래소에서도 높은 가격으로 암호화폐가 거래되곤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블록체인 관련 특허를 많이 출원한 나라로 혁신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다. 또한 암호화폐공개(ICO)에 구체적인 규제안을 만들고 조치를 취한 최초의 나라로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에 대한 감독을 초기부터 시작했다. 엄격한 규제 체제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동시에 연구개발에 투자할 자금이 많은 재벌과 대기업에 유리하게 작용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 스타트업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보다 유연하게 규제하는 타국, 특히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l 재벌과 블록체인
재벌들이 블록체인의 핵심을 손에 쥐고 있는 현상은 한국이 어떻게 시장 가치를 창출하는지 보여준다. 블룸버그 혁신지수(Bloomberg Innovation Index)에 6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이름을 올려온 한국의 대기업들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자회사가 운영하도록 하거나 그에 투자하도록 하여 시장에 진출했다. 아래에 각 회사별로 진출 전략을 상세히 다루었다.
l 카카오 주식회사
국내 1위 메시저인 카카오톡 회사로 잘 알려진 카카오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Upbit)와 주식거래서비스인 카카오스탁(Kakaostock)을 운영하는 두나무(Dunamu)를 계열회사로 두고 있다. 두나무의 자회사인 람다256(Ramda256)은 전문 개발자 없이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 루니버스(Luniverse)를 개발했다. 카카오는 도쿄에 본사를 둔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GroundX)를 통해 블록체인 사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라운드X가 개발한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인 클라이튼(Klaytn)은 지난달 30일 기준, 34곳의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인 디앱(DApps) 제공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계열사와 자회사를 적극 활용한 카카오는 카카오톡에 P2P 거래할 수 있는 암호화폐 지갑을 적용할 예정이다.
카카오는 이스라엘의 블록체인 서비스 제공업체 오브스(Orbs)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인 테라(Terra)와 같은 다수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흥미롭게도, 카카오 계열사인 두나무와 소프트웨어 제공업체인 코리아 크레딧 데이터(Korea Credit Data) 모두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물자 조달 플랫폼 개발로 성과를 보였다. 현재 카카오가 운영하고 있는 암호화폐공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있다.
l NHN 주식회사
한국 뉴스매체 뉴스원(News1)은 NHN이 한국의 국가우편서비스인 우정사업본부와 암호화폐 거래소 및 지갑 서비스 제공업체인 코인플러그(Coinplug)와 협력하여 블록체인 기반의 우편 서비스 요금청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NHN은 결제 기술을, 코인플러그는 블록체인 기술 노하우를 서로에게 제공하여 상부상조했다. 이전에는 오케이코인(OKCoin)과 블록체인 사업에 투자했다는 보도 외에 NHN이 블록체인 시장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 오케이코인 코리아는 이달 18일 이후에 출시될 예정이며 NHN은 현재 블록체인 관련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l 삼성그룹
삼성그룹은 삼성 TV, 스마트폰, 기타 전자제품 등 최소 2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업체로 연간 총 수익이 2,000억 달러를 초과한다. 일부 계열사들은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든 지 오래다.
표1. 삼성그룹 계열사 블록체인 투자 현황
삼성의 블록체인 투자 전략은 삼성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 SDS가 설립한 블록코(Blocko)가 전담하고 있다. 삼성SDS는 넥스레저(Nexledger)라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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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레저는 모니터링 툴, 외부 링크, 애블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및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운영자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데브옵스(DevOps)를 모두 포함하는 블록체인 코어 시스템입니다” -삼성 SDS 대변인
표2. 삼성 SDS의 블록체인 사업 분야
넥스레저는 정부, 제조업체, 금융, 물류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 고객들이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활용하여 혁신적이고 효율성이 높은 비즈니스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블록체인 시장 내 삼성의 영향력은 삼성전자의 채굴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채굴칩을 포함한 반도체 매출액은 2016년에는 500억 달러였고 2017년에는 전년 대비 30% 인상된 653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8년 총 매출이 감소하면서 채굴칩 공급량을 줄인 바 있다.
l 블록체인 시장에 깊이 관여하는 한국 정부
한국의 금융규제당국은 암호화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다른 정부 기관들은 재벌들과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시장에 보다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있다. 국내 대표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알려진 아이콘(ICON)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함께 후보 등록, 투표, 개표가 가능한 블록체인 기반의 선거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다수의 정부 기관들과 협력하고 있다. 아이콘은 기회는 항상 열려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위탁할 때, 여러 입증 단계를 거친다. 매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 인터넷진흥원(KISA)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같은 정부 기관들은 모든 산업 분야에 공개입찰을 실시한다. 아이콘의 공동창업자인 김 민씨는 R&D, 개념증명(PoC), 컨설팅, 파일럿 프로젝트 및 예비 구현 단계를 거쳐야 위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콘의 기업 서비스 부문 자회사인 아이콘 재단(Icon Foundation)은 2017년 암호화폐공개로 약 4,300만 달러를 모금했다. 기업과 공공 블록체인을 모두 다루는 아이콘 재단은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과 협력하는 계열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아이콘센서스(ICONSENSUS)라는 노드 캠페인을 통해 공공 블록체인 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이콘 재단은 암호화폐 이오스(EOS)가 네트워크를 운영할 블록 생산자를 선출하듯이 노드 역시 후보군을 설정해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른다.
디앱 플랫폼을 구축하는 블록체인 스타트업 플레타(Fleta)는 자체 임상시험을 통해 모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념증명 프로젝트를 개발, 위탁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플레타는 한국 정부의 지원이 다른 국내 기업, 그리고 결론적으로 국제 수준의 임상시험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항상 국내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여 기술 발전을 촉진해왔다. 이는 분명 20세기 중반에 한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새롭게 시장에 들어서는 만큼 지속적으로 한국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선두국가로 유지시킬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이미 한국보다 높은 수준의 블록체인 사업을 개발하고 있으며, 플레타의 최고경영자(CEO) 박승호씨는 이미 국내 벤처 투자가들이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지양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 실제로 국내 벤처 기업가나 투자단체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논하는 것이 부끄럽다. 그들은 블록체인 기술이나 산업에 대한 이해보다도 기술이 적용된 후 비즈니스 가치가 얼마나 증가할 지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레타 최고경영자, 박승호
올해 초부터 이달 12일까지 국내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50곳의 기업 중 블록체인 혹은 암호화폐에 관련된 기업은 3개에 불과했다. 3곳 중에서도 국내에 기반한 곳은 단 하나였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자체 암호화폐 제작에 집중하고 있고, 지방 정부들은 법정화폐를 암호화폐로 전환하여 투명성과 보안 수준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