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러시아계 캐나다인 작가이자 프로그래머이다. 2011년부터 비트코인 커뮤니티에 관여하면서 비트코인 매거진을 공동창업하고 기사도 썼다. 하지만 그는 주로 비트코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가 높고 인정받는 암호화폐 플랫폼인 이더리움을 개발한 천재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본고 작성 당시, 그의 비전에 의한 프로젝트는 시가총액 65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며 계속 성장하고 있다. 현재 약관 23세에 불과한 비탈릭은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Vitalik Buterin with a microphone

- 사진 제공: 루벤스 벤(Rubens Ben)

유년기

비탈릭 부테린은 1994년 1월 31일에 러시아의 모스크바 주 콜롬나 시에서 태어났다. 6살까지는 러시아에서 살았지만, 그의 부모는 좀더 나은 취업 기회를 찾아 캐나다 이민을 결심했다.

캐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재 프로그램에 편성되었는데, 이로써 배움의 기회는 보다 커졌지만 친구들로부터는 갑자기 멀어지고 말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자신의 특별한 기술과 재능 때문에 친구들과 심지어는 선생님들에게도 다소 별종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곧 깨달았다. 그는 수학 및 프로그래밍 재능을 타고났고, 일찍부터 경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세 자리 숫자를 평균적인 또래 아이들보다 배나 빠른 속도로 암산할 수 있었다.

Little Vitalik Buterin with a computer

출처

부테린은 사교 모임이나 과외활동 행사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그를 무슨 수학 천재인양 얘기했다고 한다. 당시에 그는 자신이 왜 다른 이들처럼 평균 75퍼센트의 평범한 사람이 못 되는 것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탈릭은 새로운 나라와 문화에 익숙해지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초인적인 정신 능력과 놀라운 재능으로 인해 또래들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그는 학습 과정과 인터넷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고, 자신의 직업적, 개인적 관계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구축했다.

그 후에는 토론토의 사립 고등학교인 아벨라르 스쿨(Aberald School)에서 4년을 보냈다. 그는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롭고 생산적인 기간 중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학교는 교육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바꿔놓았으며, 이곳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그의 태도와 성적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바로 이 아벨라르 스쿨에서 그의 특징인 배움에 대한 갈망이 싹텄으며, 배움은 사실상 그의 인생의 주된 목표가 되었다.

비탈릭은 항상 꽤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한동안은 숙제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는 데 더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는 13살 때부터 이 게임을 즐겨왔지만, 2010년의 어느 날 그의 게임 캐릭터의 속성 일부가 블리자드사의 업데이트로 인해 바뀌고 말았다. 그날 밤 그는 울다가 잠이 들었으며, 그 후로 탈중앙화 서비스가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학교 생활

비탈릭이 암호화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새로운 열정의 대상을 찾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아버지로부터였다. 그의 아버지도 2013년에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그가 이 분야에 바로 뛰어든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암호화폐는 실질적인 가치가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얘기를 몇 번 더 듣게 되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마따나, 어떤 것에 대해 재차 듣게 된다면 시간을 들여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 당시에 이미 비탈릭은 정부의 규제나 기업의 통제와 관련된 모든 것은 명백한 악이라 보고 있었다. 자연히 비트코인의 탈중앙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성격은 그의 관심을 끌었다. 선악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 후로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는 권력자들에게 지나치게 큰 힘이 집중되어 있다는 확신 하에 움직이고 있다.

부테린은 결국 다양한 비트코인 관련 포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네트워크를 연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네트워크의 암호화폐적 요소만이 그의 관심사였지만, 커뮤니티에 점점 더 깊이 관여하면서 비트코인 기반 기술이 가진 거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약간의 토큰을 손에 넣어 이 새롭고도 실험적인 경제분야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싶었지만, 토큰을 채굴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도, 비트코인을 매입할 현금도 없었다. 그래서 다양한 포럼에서 급여를 비트코인으로 지불해주는 일거리를 찾았다. 마침내는 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기사 한 건당 비트코인 5개 정도를 얻을 수 있었다.

비탈릭 부테린은 포럼 작업과 기사를 통해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높이고 커뮤니티에도 어느 정도 자신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동시에 암호화폐의 모든 다양한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측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루마니아에 거주하고 있던 열렬한 비트코인 지지자인 미하이 알리시에(Mihai Alisie)가 그의 글에 주목하면서 이들은 활발하게 서신을 교환하다가 2011년 말에 비트코인 매거진(Bitcoin Magazine)을 공동 창간했다. 비탈릭 부테린은 이 매거진의 메인 작가 일을 하는 한편으로 암호화폐 전문가인 이안 골드버그(Ian Goldberg)의 연구 보조 아르바이트 일도 했다. 뿐만 아니라 워털루 대학(University of Waterloo)의 고급 과정을 다섯 개나 이수했다.

2013년 5월에는 비트코인 관련 회의에 비트코인 매거진의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로 여행을 떠났다.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던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비탈릭 부테린이 목격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이 프로젝트가 그야말로 뛰어들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해 말,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그 동안 모아놓은 비트코인 중 일부를 사용해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기능을 확장하고 그 규모와 역량을 확대하고자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Bitcoin Magazine covers

여행하는 동안 그는 비트코인을 받는 뉴햄프셔의 작은 가게들과 베를린의 식당들로부터 전 세계의 비트코인 자동 입출금기(ATM)와 다양한 소규모 커뮤니티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비트코인 관련 프로젝트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주로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여전히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의 기능을 개선하고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2013년 10월에는 이스라엘을 방문해 'CovertCoins'와 'MasterCoin'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던 사람들을 만났다. 이 프로젝트들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비트코인 상에서 토큰을 발행해 사용자가 금융 계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등이었다. 그 밑바탕에서는 여전히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비트코인 거래에 새로운 속성이 할당되고 있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있던 프로토콜들을 살펴본 비탈릭은 이들의 모든 기능을 튜링-완전 프로그래밍 언어로 대체하면 이 프로토콜들이 하는 일들을 대대적으로 일반화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컴퓨터 과학에서 튜링-완전 프로그래밍 언어란 적절한 알고리즘과 필요한 만큼의 시간 과 메모리가 주어질 경우 컴퓨터가 어떠한 특정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을 말한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기존의 프로젝트에 제시했지만, 모두들 그의 아이디어가 흥미롭긴 해도 아직은 그처럼 거창한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 일을 직접 하기로 했다.

이더리움

2013년 말, 비탈릭 부테린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백서에 기술해 몇몇 친구에게 보냈고, 그들은 이 백서를 더 많은 이들에게 보냈다. 그 결과, 30여 명이 이 개념에 대해 얘기하고자 그에게 연락해 왔다. 그는 비판적인 의견을 원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개념에 있을지 모르는 심각한 실수를 지적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thereum logo

그때까지도 이더리움의 개념은 거의가 여전히 통화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아이디어에 완전히 동의하는 사람들과 회의와 토론을 거듭하면서 변화되고 구체화되었다. 일단 프로그래밍 언어가 주어지자, 이들은 그것을 이용할 새로운 방법들을 매주마다 생각해냈다. 2014년 1월 말에 이르자 이 팀은 탈중앙화 파일 저장소를 만들기가 비교적 쉬우며, 네임 레지스트리와 같은 개념도 코드 몇 줄이면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한 활용 사례들이 쌓여감에 따라 이들은 비탈릭의 아이디어를 서서히 변화시키면서 점차 오늘날의 이더리움으로 만들어갔다.

이 프로젝트가 공개적으로 발표된 것은 2014년 1월로서, 비탈릭 부테린, 미하이 알리시에(Mihai Alisie), 안토니 디 로리오(Anthony Di Iorio), 찰스 호스킨슨(Charles Hoskinson), 조 루빈(joe Lubin)과 개빈 우드(Gavin Wood)가 그 핵심 팀을 구성했다. 부테린은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비트코인 회의석상에서 이더리움을 발표했으며, 그로부터 불과 몇개월 후에 그의 팀은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 네트워크 고유의 토큰인 이더의 크라우드 세일(crowdsale) 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 무렵에 비탈릭 자신은 틸 장학재단(Thiel Fellowship)으로부터 10만 달러 상당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의 팀은 비트코인을 받고 이더를 판매한 크라우드 세일을 통해 암호화폐 커뮤니티로부터 3만1,000 BTC가 넘는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는 당시에 약 1,800만 달러에 상당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크라우드 세일 당시에는 약 650달러에 거래되던 비트코인 시세가 곧 폭락하면서 그의 팀은 피할 수도 있었던 수백만 달러의 손실에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조달된 자금으로 그의 이더리움 팀은 이더리움 재단(Ethereum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것은 스위스에 소재한 비영리 단체로서, 이더리움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Vitalik Buterin and ICO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더리움의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은 지금까지 있었던 중 세 번째로 성공적인 캠페인이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수많은 주요 금융지가 이 플랫폼을 기사로 다루었다.

이더리움 재단은 네트워크가 공식 출범하기 전에 여러 코드네임의 이더리움 플랫폼 시제품을 개발해 테스트했다. '올림픽(Olympic)'이라는 버전은 이러한 시제품 중 마지막 버전이자 공개 베타 프리릴리즈 버전이었다. 수많은 초기 사용자들이 이 시스템의 버그와 오류를 찾아 나섰는데, 이는 이더리움 팀이 이 네트워크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위해 25,000 이더의 '버그 현상금'을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30일, 이더리움 최초의 공개 사용 버전인 '프런티어(Frontier)'가 출시되었다. 이것은 아직 시험 출시로서 명령어 라인 밖에 없는 '베어본(bare bones)' 포맷으로 선보였지만, 개발자들은 이를 통해 탈중앙화 앱을 제작해 환경을 실시간 테스트할 수 있었다. 이 플랫폼은 개발자와 감사 모두가 충분히 안정적이라고 판단하자 '홈스테드(homestead)' 버전으로 마이그레이션 되었다.

마이그레이션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첫 공식 버전이 출시된 2016년 3월 14일에 이루어졌다. 이로서 차세대 블록체인 기술이 시연되기 시작했으며, 개발자들에게 보다 큰 자유가 주어졌고 사용하기는 훨씬 더 쉬워졌다. 그 이면에서는 수많은 기술적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무렵에 이더리움은 이미 암호화폐 시장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의 활성 노드 수는 약 5,100개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에 비트코인의 활성 노드 수가 6,000개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히 인상적이다. 게다가, 이더로 거래하기 시작하는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으며, 이더 자체의 평가액도 급격히 증가했다. 첫 출시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같은 대기업들이 이미 이더리움 플랫폼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으며, 협업을 위해 비탈릭과 그의 팀에게 직접 접근해왔다.

그 다음 번의 대대적인 업데이트인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두 파트로 나뉘어 이루어질 예정이다. 첫 번째 파트인 '비잔티움(Byzantium)'은 2017년 9월~10월 기간에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차례 연기되었다. 이 업데이트는 네트워크를 완전히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이전 버전보다 빠르고 가벼우며 보다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더리움의 최종 단계인 '세레니티(Serenity)'가 도입될 예정이지만, 이는 아직 그 대략적인 출시일 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이더리움이란?' 참조

해커, The DAO와 하드 포크

사용자는 이더리움 플랫폼을 통해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과 그 밖의 다양한 용도를 구축하는 것 외에도 탈중앙화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면서 이를 상당히 복잡한 일련의 사전 정의된 규칙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장기적으로 운영되는 실체들이다. 이러한 규칙은 한 개인이나 일단의 사람들이 작성한 스마트 컨트랙트에 정해져 있다. 초기 자금조달 기간이 있는데, 사용자는 이 기간 동안에 소유권을 나타내는 토큰을 매입해 DAO에 자금을 추가해 줄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 기간이 끝나면 DAO가 운영되기 시작한다. 사용자는 DAO의 자금 사용 방법을 제안할 수 있으며, 토큰을 매입한 회원은 이러한 제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입한 토큰이 실제 소유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다만 다양한 문제에 대한 투표권은 부여된다. 비트코인은 기본적으로 제일 처음에 설립된 DAO로서, 그 핵심 팀과 채굴 네트워크의 합의에 의해 관리된다. 다른 모든 DAO는 이더리움 플랫폼 상에 생성되고 있다.

'The DAO'는 독일의 스타트업 Slock.it를 설립한 팀이 만든 특정 DAO의 이름으로서, 여기에서 제공하는 '스마트 록(smart lock)'을 통해 사람들은 자동차, 아파트 등과 같은 자신의 물건들을 탈중앙화 버전의 에어비앤비(Airbnb)에서 공유할 수 있었다. The DAO는 1만 1,000명이 넘는 회원들로부터 1억 5,0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여 사상 최대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가 되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그 개발자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었지만, 그들은 이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The DAO가 해킹을 당한 것이다. 해커가 이용한 버그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내내 완벽하게 작동해 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모든 네트워크 시스템은 어느 정도는 해커 공격에 취약하게 마련이며, 심지어는 해커 자신도 The DAO의 기술적 허점을 이용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2016년 6월 17일, 누군가가The DAO로부터 그 구조를 그대로 베낀 '자식 DAO'로 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 해커는 The DAO로부터 5,000만 달러 상당의 이더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20달러가 넘던 이더의 시세는 즉각 13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이더리움 팀은 The DAO나 그 해킹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결국 이 사태의 처리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금의 유출을 막고 이를 또 다른 스마트 컨트랙트로 옮겼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The DAO 코드가 작성된 방식 때문에 해커가 이들의 자금에 손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더리움 팀이 모종의 개입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암호화폐 분야에서는 이러한 개입을 '포크(fork)'라고 한다. 처음에는 '소프트 포크(soft fork)'가 제안되었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탈중앙화 네트워크의 리셋 버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더리움 네트워크 전체를 되돌리는(rollback) 것으로서, 사실상 The DAO를 없애고 모든 돈은 투자자들에게 변제만 가능한 스마트 컨트랙트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안으로 인해 실존주의적인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더리움 커뮤니티 내에 분열이 일어났다. 이 커뮤니티의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탈중앙화라는 성격인데, 이는 모든 결정권이 커뮤니티 내에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개입한다면 그 원칙을 완전히 손상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소프트 포크라는 제안을 위해서는 이더리움 채굴자 대다수가 롤백(rollback)에 대해 투표해야 하지만, 투표 과정에 보안상의 결함이 있어 이러한 선택권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유일한 선택지는 '하드 포크(hard fork)'뿐이었다. 본질적으로, 원래와는 다소 다른 규칙을 갖는 완전히 새로운 버전의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채굴자, 거래소, 일반 사용자, 그리고 그 위에 구축된 다른 주요 앱들은 이 새로운 버전의 이더리움의 일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원래 버전에 머물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이 하드 포크 제안은 이더 보유자들에 의해 투표에 부쳐졌고, 무려 89퍼센트에 달하는 거의 대다수가 찬성표를 던짐에 따라 2016년 7월 20일에 하드 포크가 실행되었다.

이것이 이더리움 클래식(Ethereum Classic)의 탄생비화였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암호화폐로 취급되어야 한다. 독자적인 블록체인을 가지고 있고 이더리움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블록체인은 DAO 투자자들에게 환불해주기 위한 하드 포크가 구현된1920000번째 블록에 이르기까지는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이더리움 클래식은 여전히 이더리움과 정확히 동일한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다.

Vitalik Buterin wearing a T-shirt “ETH We trust”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중 블록체인'은 투자자와 일반 사용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게다가, 양쪽 블록체인에 대한 재전송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거래가 사용자의 동의 없이 또는 심지어 사용자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체인에서 재연될 수 있다. 앞서 언급된 거래에 대한 암호화폐 서명이 다른 블록체인에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탈릭 부테린과 매스 미디어

비탈릭 부테린은 비트코인 매거진의 공동 창립자이자 메인 작가였다. 이 매거진은 온라인 프로젝트로 출발했으며, 부테린과 다른 한 명의 공동 창립자인 미하이 알리시에는 매거진의 재정 상황이 저조할 때는 비트코인에 대한 개별 기사를 다양한 포럼에 팔기까지 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는 인쇄판을 출판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암호화폐만을 다루는 최초의 진지한 출판물로 언급되곤 한다. 이 인쇄판 매거진은 전세계의 가입자들에게 우편 발송되었으며, 반즈&노블을 비롯한 여러 서점에서 판매되었고, 온라인으로도 발행되었다. 비탈릭은 일주일에 10~20시간 정도를 이 출판물에 할애했으며, 2014년까지 이 출판물에 관여했다. 비트코인 매거진은 현재 BTC 미디어(BTC Media)에서 소유 및 운영하고 있다.

비탈릭은 레저(Ledger)에도 기고했는데, 이것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논문을 발행하는 동료 심사 학술지로서, 피츠버그 대학의 대학 도서관 시스템(University Library System)에서 발간된다.

이더리움 기업 연합

2017년 3월, 다양한 블록체인 스타트업과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학계 및 기술 벤더들이 이더리움 기업 연합(Enterprise Ethereum Alliance, EEA)의 설립을 발표했다. 당시의 창립 멤버 수는 30개였지만, 본고 작성 시점에서는 삼성SDS,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마스터 카드, 시스코 시스템즈 등의 글로벌 대기업을 포함해 150여 개가 넘는 회원사가 포진하고 있다.

Enterprise Ethereum Alliance logo

이 연합의 목적은 회원사들을 이더리움 주제 전문가들과 연결시켜 이더리움 플랫폼으로부터 배우고 이를 토대로 구축해 나감으로써 아무리 복잡하고 까다로운 애플리케이션이라도 가능한 엔터프라이즈급 소프트웨어를 정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은행, 경영, 컨설팅, 기술, 엔터테인먼트 등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이 이더리움 전문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을 자사의 운영에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부테린의 중국 활동

비트코인과 기타 암호화폐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하면서도 종종 상반되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기술과 이더리움 플랫폼은 중국 전역의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비탈릭의 개인적 유명세도 이러한 추세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데, 특기할 만한 점은 그가 중국어를 폰에 탑재된 앱을 이용해 불과 몇 달 만에 익혔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이더리움이 제도적인 차원에서 연구 및 통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제일의 대학인 북경대학은 이더리움 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중국의 공급망과 에너지 시장에서 사용될 프로토콜 개선 및 애플리케이션 활용 사례를 연구할 예정이다. 중국 조폐공사(China Banknote Printing and Minting)의 부설 기관인 로열 차이나 조폐국(Royal Chinese Mint)은 중국 위안화의 디지털화를 위해 이더리움의 ERC20 토큰 표준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실험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기업과 스타트업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EEA의 창립 회원사들로서, 많은 자원과 인력을 이더리움 플랫폼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연구 및 구현에 쏟고 있다.

2016년 5월, 11개 지역의 상품 거래소, 증권 거래소 및 금융자산 거래소가 차이나레저 얼라이언스(ChinaLedger Alliance)를 설립했다. 그 목표는 향후 개발자들의 추가 구축 기반이 될 수 있는 오픈소스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중국증권협회 인터넷위원회(Internet Commission of the Securities Association of China)가 그 자문 역할을 맡고 있으며, 비탈릭 부테린을 비롯한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유명인사들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비탈릭은 펜부시 벤처캐피털(Fenbushi Venture Capital)의 제너럴 파트너 역할도 맡고 있는데, 이 회사는 블록체인 역량을 갖춘 기업에 독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중국 최초이자 최대의 자본 기업이다.

부테린의 러시아 활동

암호화폐의 기본 개념인 탈중앙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성격은 다소 반항적이면서 반체제적이라서 그런지 항상 러시아인들의 마음에 와 닿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수많은 컴퓨터 전문가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불과 여섯 살 때 러시아를 떠나오긴 했지만 부테린 자신도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로 인해 그는 러시아에서 매우 유명하고 평판 높은 인물이 되었다.

2017년 8월에 5,000명이 넘는 군중이 비탈릭의 연설을 듣기 위해 스콜코보에 모여들었다. 그는 러시아가 영국 및 싱가포르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의 연구 및 실험이 가장 활발한 상위 3개국에 속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모스크바는 이더리움 네트워크 전체에서 가장 큰 노드 클러스터 중 하나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탈릭은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록체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 이는 이 기술에 대한 열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방문 중에 푸틴 대통령을 만났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 만남이 비탈릭의 러시아 방문 조건 중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이 만남에서 부테린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러시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설명했고, 대통령은 이 아이디어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루어진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디지털 경제라는 아이디어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러시아는 현재 상품의 디지털 추적, 개인 식별 및 디지털 소유권 보호를 위한 블록체인 관련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Putin, Buterin and an Ether

2017년 10월에 러시아 최대의 은행인 스베르방크(Sberbank)가 EEA에 합류했다고 발표했다. 이 때까지는 EEA에 가입한 러시아 기업은 전자결제 서비스 제공업체인 QIWI가 유일했었다. 스베르방크는 규제당국, 경제부 장관, 다른 러시아 은행들 및 러시아 국제상공회의소와 협력하여 '스마트' 신용장 및 보증서의 테스트를 이미 마쳤다고 밝혔다.

2017년 8월의 러시아 방문 시에 부테린은 러시아의 이동통신 및 연결기기 업체인 요타 서비스(Yota Services)의 CEO인 블라디슬라브 마르티노프(Vladislav Martynov)와도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는 이더리움 러시아(Ethereum Russia)라는 새로운 기업의 설립도 수반되는데, 이 기업은 러시아 국영 개발 은행인 Vneshtorgbank(VBT)에 교육, 행사 및 구조 검토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 은행은 국립 과학기술 대학(MISIS)의 블록체인 연구를 위한 새로운 센터 개발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 개발 또한 이더리움 러시아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 새로운 센터의 목표는 정부 서비스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이를 위해 정부 및 기업들과 협력하게 된다.

부테린의 사망에 대한 가짜 뉴스

2017년 6월 25일, 비탈릭 부테린이 자동차 충돌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가짜 뉴스가 돌면서 이더는 40억 달러 상당의 시세 손실을 입었다. 이 가짜 뉴스의 출처는 익명의 이미지 보드이자 트롤(troll: 인터넷에서 고의로 상대방을 자극해 불쾌하게 만드는 이들)의 천국인 4Chan이었다. 이더리움은 손실된 모든 가치를 유지했지만, 이러한 농간 행위로 인해 비탈릭이 플랫폼과 암호화폐 전반 및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갖는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비트코인의 창시자가 완전한 익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매우 현명한 처사인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행보

비탈릭의 현재 거주지는 싱가포르로서, 여느 때나 다름없이 자신의 창조물인 이더리움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맨 처음에 불과 세 명으로 출발했던 이더리움 프로토콜 연구 팀이 머지않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기를 그는 희망하고 있다.

그는 이 플랫폼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어서, 이더리움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이더리움 뿐이라고 말한다. 부테린과 그의 팀은 새롭고 보다 안정적이며,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더리움 버전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확장성, 최적화, 비용 효율성 및 보안이 이를 위한 최대 해결과제라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수상 경력

  • 2014년, 틸 장학재단상(Thiel Fellowship Award)
  • 2014년, IT 소프트웨어 부문 세계 기술
  • 포춘의 영향력 있는 40대 이하 40인(Fortune 40 under 40) 명단에 선정
  • 포브스의 영향력 있는 30대 이하 30인(Forbes 30 under 30) 목록에 선정

블록체인과 미래에 대한 부테린의 코멘트

“이처럼 흥미롭고 다분야에 걸친 산업 영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정말이지 고맙게 생각한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각 분야의 저명한 암호화폐 전문가, 수학자 및 경제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전세계의 수십만 명에게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프트웨어와 툴의 작성을 지원하고, 매주 컴퓨터 과학, 경제 및 철학 분야의 까다로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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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과를 통해 중앙집권적 존재들 일부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는 무력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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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처리속도는 초당 3건 미만이지만, 이더리움은 초당 5건이다. 우버의 승차 건수는 초당 12번이다. 2년만 있으면 블록체인이 비자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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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낙관적인 시각을 갖게 해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암호화폐와 이더의 매입 및 보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를 이용해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는 데 흥미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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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처음으로 일일 거래 수 5,000만 건이 넘는 기록을 세웠다. 즉, 초당 7건 정도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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